천주교 문화의 향기가 깃든 신평 원머리성지와 신평성당
"성스러운 당진 원머리성지와 신평성당"
당진에는 정말 천주교 성지가 많이 있고 또 관리가 잘 되고 있다. 김대건 신부의 출생지인 솔뫼성지를 비롯해서, 참 아름다운 신리성지와 최근에 조성 중인 황무실 성지 그리고 원머리성지 까지 있고 합덕성당과 신평성당 등 성당도 순례자들이 많이 찾고 있다.
‘원머리’는 간척을 위해 제방을 쌓아 놓은 첫머리를 뜻하는 ‘언머리’가 변형되었다고 한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원머리는 옛날에는 바닷가 마을이었는데 간척 사업으로 지금은 평야의 한가운데에 있는 마을이 되었다. 위의 사진은 원래 원머리 성지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 것인데 그것을 다시 사진으로 담아보았다.
신평 원머리에는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온 1780년대 후반에 신자들이 생겨났는데 이미 원머리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이 공동체는 민중 종교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신분과 남녀의 차별을 극복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재물을 나누어 주어 당시에는 혁신적인 모습이었다.
원머리 신앙 공동체는 1866년 병인박해가 발생하자 1868년까지 16명의 원머리 출신의 순교자들이 생겨났는데 그중 6명은 홍주와 해미에서 생매장을 당해 순교하였다. 이런 박해로 인해서 파괴되었던 원머리 공동체는 1880년대에 이르러 되살아났다.
박해 중 잠시 떠났던 신자들이 되돌아오면서 적극적인 선교 활동을 하였고 이 이어져 나중에는 신자들이 마을을 주도하는 형태로 변모하였다. 원머리와 주변 지역은 성장을 거듭하여 신평 지역에서 가장 큰 교세를 이루었기에 1975년 신평 성당이 설립될 때 중심 역할을 하였다.
원머리성지에는 순교자들의 무덤이 있다. 1868년 수원에서 순교한 박선진(마르코)과 박태진(마티아)의 무덤이 있고, 두 분 순교자의 시신을 수습하고 운구한 공로로 그들의 묘 옆에 서덕행 공로자의 묘가 있다. 수원감옥에 갇힌지 15일 만에 순교했는데 순교 할 때 박선진(마르코)는 33세였고 박태진(마티아)는 52세였다.
박선진과 박태진의 묘소는 1989년 신평 성당 구내로 이장되었다가 2009년에 다시 원머리로 옮겨졌다. 그 사이 원머리 묘역에는 순교자 유해가 없었음에도 빈 무덤을 잘 보존하고 있어 원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원머리성지는 주차장과 화장실이 있고 원머리성지에 대한 설명과 병인대박해시 순교자 명단, 근현대 순교자 두 분과 순교자의 사복추진 현황 등을 안내하는 게시판이 서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이곳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원머리성지에서 원머리로를 지나 신평시장2길을 지나면 신평성당이 있다. 약 2.9km정도 떨어져있는데 1975년 신평면 소재지에 신평성당을 설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지역에는 1876년 원머리 공소 설립을 시작으로 매산, 음섬 공소 등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신앙 교우촌 공소가 셋이나 있었고 많은 순교자들이 현재의 신평성당을 낳게 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성당은 참 아름답다. 그리고 이곳에는 2009년에 순교자 박선진 마르코와 박태진마티아 기념비를 세웠고 기념비를 읽으면서 숙연하게 해 준다. 사실 개인의 종교를 떠나서 믿음을 지키면서 순교한 분들을 보면 정말 경외심이 절로 흘러나온다. 원머리 성지와 신평성당을 함께 돌아보는 것이 더 좋다.
♦ 원머리성지
주소 : 당진시 신평면 한정리 231-1
♦ 신평성당
주소 : 충남 당진군 신평면 신평길 63
전화 : 041-363-6761